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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포시 전경 사진 군포시전경
  • 백제(광주의 속현) ▶ 고구려(율목군) ▶ 통일신라(율진군) ▶ 고려(과주군) ▶ 조선(과천현) ▶ 일제강점기(과천군) ▶ 1914년(시흥군 남면) ▶ 1979년(시흥군 군포읍) ▶ 1989년(군포시)
삼국시대

군포시는 상고시대에 삼한(三韓) 중 마한(馬韓)의 영토였으나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가 됐다. 그 후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이어 왕 위에 오른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진정책을 추진해 백제의 수도 한산을 점령함에 따라 경기도 전 지역이 고구려 영토가 됐다. 고구려는 현재 과천시의 전역과 군포시, 안양시의 만안구 안양동, 동안구의 호계동 등을 「율목군(栗木郡)」이라고 칭했다.
 

통일신라시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에 따라 군포는 신라의 영토에 속하게 된다. 신라는 신문왕에 이르러 행정구역을 정비해 9주 5소경을 설치했다. 9주 아래 설치한 군과 현은 경덕왕 대에 일대 개혁이 이뤄졌는데, 이때 율목군이 「율진군(栗津郡)」으로 개칭됐다. 당시 율진군은 현대의 경기도의 과천시와 군포시, 서울특별시의 용산구․동작구․서초구 일부 지역이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신라 말기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하던 시기를 거쳐 후삼국이 성립된 후 다시 왕건에 의해 후삼국이 통일되고 고려 왕조가 성립됐다. 고려 태조는 신라시대 주, 군, 현의 행정지명을 전면적으로 개정해 군포가 속한 율진군을 「과주군(果州郡)」으로 명칭을 바꾸고 치관으로 감무관(監務官)을 뒀다.

조선시대

조선이 건국된 이후 태종 13년(1413)에 지방행정 구역이 8도 체재로 전면 개편됐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목․도호부․군․현으로 단위가 개편됐는데, 과주군은 군에서 현으로 강등되며 「과천현」으로 개칭됐다. 과천현은 이듬해 다시 금천현과 합병돼 금천현의 ‘금’자와 과천현의 ‘과’자를 합해 금과현이라고 칭해졌으나 불과 두어 달 만에 종전대로 복귀됐다. 이어 세조 2년(1456)에 다시 금천현과 병합됐지만 역시 얼마 안 돼서 원래대로 복귀됐다.

근대

1894년 고종 31년 제정된 홍범 14조, 1895년 반포된 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에 관한 건’에 따라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돼 종래의 부․목․군․현의 지방행정단위가 모두 군으로 통일됨에 따라 과천현이 「과천군」이 됐다.
이후 조선이 일본에 강제 합병된 191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의하면 과천군 남면의 행정구역은 <산본리, 당리, 용호리, 장간리, 부곡리, 괴곡리, 금정리, 당정리, 봉성리, 초막리>의 10개리이다. 1914년에는 시흥군․과천군․안산군의 3개 군이 합병해 시흥군이 됨에 따라 과천군 남면(군포시)은 시흥군 남면이 돼서 당리, 당정리, 금정리, 산본리, 부곡리를 관할했다.

현대

1914년 3월 1일 시흥군 남면이 된 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9년 4월 7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의해 동년 5월 1일 시흥군 남면이 시흥군 군포읍으로 승격했다. 그 후 경제개발이 활발히 전개되고, 산업시설이 입지가 유리한 군포지역으로 이전되면서 지역의 개발속도가 급진전했다. 이에 수반해 행정의 수요도 날로 증가함에 따라 효율적인 지역관리를 위해 정부는 1989년 1월 법률 제4050호로 시흥군을 분리해 군포읍을 군포시로, 의왕읍을 의왕시로, 소래읍․수암면․군자면을 통합해 시흥시로 승격시켰다.

이로 인해 군포시는 1989년 1월 1일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지위를 갖추고 주민 위주의 행정을 수행하게 됐다. 그 결과 초기에 관할하게 된 지역은 ‘군포시 동의 명칭 및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에 의해 당동, 당정동, 부곡동, 산본동, 금정동의 5개 법정동이다. 또한 별도 ‘군포시 행정운영동의 설치 및 동장 정수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당동 일부를 군포1동으로, 당동 일부와 부곡동을 합해 군포2동으로, 당정동을 당정동으로, 산본동을 나눠 산본 1동과 산본2동으로, 금정동을 금정동으로 한 6개의 행정동을 하부조직으로 설치했다.

그 후 신도시 건설을 위한 산본동과 금정동 일부지역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고 주택건설로 인한 입주민 및 행정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조례 제281호(1992. 4. 28.공포)에 의하여 1992년 5월 1일 금정동을 분동하여 행정동인 재궁동을 설치하였다. 또한 조례 제295호(1993. 1. 14.공포)로 재궁동을 분동하고 1993년 1월 14일 오금동을 신설하였으며, 조례 제308호(1993. 6. 8.공포)에 의하여 산본2동을 분할하여 1993년 6월 8일 수리동을 신설하였다. 1년 후에는 조례 제347호(1994. 7. 19.공포)로 수리동을 분할하여 1994년 7월 19일 궁내동을 신설함으로써 행정동이 총 10개동이 되었다.

시로 승격한 후에 법정동은 변동없이 내려오다가 대통령령 제14434호(1994. 12. 26.공포)에 의하여 행정구역의 일부조정으로 화성군 반월면 둔대리, 속달리, 대야미리, 도마교리 등 4개리가 군포시로 편입됨에 따라 조례 제363호(1994. 12. 29.공포)에 의하여 군포시 둔대동, 속달동, 대야미동, 도마교동 등 4개 법정동이 증설되어 총 9개동이 되었으며 조례 제364호(1994. 12. 29.공포)에 의하여 4개 동의 행정을 수행할 행정동으로 대야동이 설치되었다. 이로 인하여 행정동이 11개 동으로 증가하였다.

그 후 입주시민의 증가로 동 행정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산본2동이 조례 제381호(1995. 2. 28.공포)에 의하여 1995년 2월 28일 분할되며 광정동을 신설하여 행정동은 12개동이 되었으며, 1998년 유사중복기구의 통폐합 및 기능쇠퇴 부서를 과감히 폐지, 새로운 행정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도록 한 정부방침에 따라 시조례 제520호(1998. 10. 1.공포)로 당정동을 군포1동에 통합하여 11개 행정동이 운영되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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